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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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의 얼굴 / 마종기삶 2020. 8. 7. 10:00
맑은 날의 얼굴 / 마종기 그만한 고통도 경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하늘나라를 기웃거릴 수 있겠냐구? 그만한 절망도 경험해 보지 않고, 누구에게 영원히 살게 해 달라고 청할 수 있겠냐구? 벼랑 끝에 서 있는 무섭고 외로운 시간 없이 어떻게 사랑의 진정을 알아낼 수 있겠냐구? 말이나 글로는 갈 수 없는 먼 길의 끝의 평화, 네 간절하고 가난한 믿음이 우리를 울린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따뜻하다 하늘을 보니 네 얼굴이 넓게 떠 있다 웃고 있는 얼굴이 몇 개로 보인다. 너 같이 착하고 맑은 하늘에 네 얼굴 자꾸 넓게 퍼진다. 눈부신 천 개의 색깔, 네 얼굴에 퍼진다. 오늘은 호우특보인데 파아란 하늘이 보입니다 좋은데,,,, 좀 상쾌하지 않은 느낌입니다 파아란 하늘이 빨리 돌아오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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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말 / 마종기삶 2020. 7. 15. 18:59
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나, 그대와 함께 했던 그때만이 오직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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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 마종기삶 2020. 7. 9. 22:30
길 /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 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거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 황혼이 내리는 바닷가 찻집에서 커피 한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