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지일몰
-
이외수 시모음삶 2017. 7. 17. 18:56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부는 날에는 바람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세월의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두고 / 이외수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
-
서시 / 김남조삶 2015. 9. 13. 21:25
서시 / 김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이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 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몹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대있음에/김남조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마음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
-
어머니의 못 / 정일근 외삶 2015. 6. 30. 09:16
어머니의 못 / 정일근 교회에 다니는 작은 이모는 예수가 사람의 죄를 대신해 못 박혀 죽었다는 그 대목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흐느낀다 어머니에게 전도하러 왔다가 언니는 사람들을 위해 못 박혀 죽을 수 있나, 며 함께 교회에 나가 회개하자, 며 어머니의 못 박힌 손을 잡는다 어머니가 못 박혀 살고 있는지 작은 이모는 아직 모른다 시를 쓴다며 벌써 여러 해 직장도 없이 놀고 있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작은 못이며 툭하면 머리가 아파 자리에 눕는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박힌 큰 못이다 그렇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나는 삐뚤어진 마루판 한 짝이어서 그 마루판 반듯하게 만들려고 삐걱 소리나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는 스스로 못을 치셨다 그 못들 어머니에게 박혀 있으니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식당일 하시는 어머니의..
-
꽃지에서 차 한잔 하며, 11월을 배웅합니다삶 2014. 11. 30. 15:03
11월을 배웅하고 싶었습니다 예식장에 다녀서, 급하게 출발했는데 5분 늦었습니다 일몰이 상당히 진행이 됐네요 작가님들이 무지 오셨네요 적당한 장소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안착합니다 바닷가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물결을 바라봅니다 마음 속에는 아직도, 어린시절에 처음 바다를 보았던 두근거림이 있습니다 홀로 천천히 걷다가 , 깊게 숨을 쉬고, 가슴 속 깊이 만나는 것들과 교감합니다 물결너머 수평선과도 하나되어 바다 속 깊은 곳에서 묻어오는 냄새를 맡습니다! 입고, 먹고, 말하는 일상의 많은 일들로부터 조금은 외형적인 것들로부터, 내면으로 들어와, 내 나름대로 살아온 삶이, 남들도 그렇게 그들대로 살아간다는 생각에 이르는데, 참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기 할매바위 아래 사람들이 낯설지 않습니다 헤아릴수 없는 ..
-
슬플 때에는 바람처럼 꽃처럼 / 김정란삶 2014. 7. 30. 23:04
슬플 때에는 바람처럼 꽃처럼 / 김정란 슬플 때는 바람처럼 꽃처럼 가만히 삶의 옆얼굴에 손을 대어본다 그리고 들여다보면 손금 속에는 작은 강물이 흘러 랄랄라 랄랄라 숨죽여 노래하듯 울고 있는 눈물 젖은 날개 상한 깃털들 그 강물 속에 보이네 청이도 홍련이도 민비도 죄 모여 앉아서 가만가만 그 깃털들 말리고 있어 가슴이 저려서 갸웃이 고개 숙이고 조금씩 조금씩만 걸어가지 슬플 때는 바람처럼 꽃처럼 가만히 삶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갸웃이 바라본 그것 얼마나 가슴저리게 아름다운지 얘기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