곷 등하나 내걸다-손세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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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산 2014. 4. 8. 21:49
저문 산에 꽃燈 하나 내걸다 - 손세실리아 산을 내려오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늙은 나무의 흰 뼈와 바람에 쪼여 깡치만 남은 샛길이 세상으로 난 출구를 닫아걸고 있습니다 아직은 사위가 침침하지만 곧 사방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들겠지요 그렇다고 산에 갇힐까 염려는 마세요 설마 그러기야 할라구요 또 그런들 어쩌겠어요 혹시 보이시는지 점자를 더듬는 소경처럼 빛이 아물어야만 판독 가능한 저 내밀한 것들의 아우성 말입니다 밤하늘을 저공 비행하는 반딧불이의 뜨거운 몸통과 흐르지 못하고 서성이는 시린 산그늘, 팥배나무 잎맥에 파인 바람의 지문과 억겁을 휘돌아 식물의 육신을 빌려 짓무른 환부를 째고 해산한 꽃잎 끈 눈물 같은 사리 한알 내 안의 오래된 상처도 푸르고 곱게 부식되어 다음 생엔 부디 이마 말간 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