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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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었다 / 나호열삶 2020. 9. 25. 05:43
꽃이 피었다 / 나호열 바라보면 기쁘고도 슬픈 꽃이 있다 아직 피어나지 않아 이름조차 없는 꽃 마음으로 읽고 눈으로 덮어버리는 한 잎의 향기와 빛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향일성 向日性의 시간의 촛대 위에 담쟁이 넝쿨 같은 촛불을 당기는 일 내 앞에서 너울대는 춤추는 얼굴 그 그림자를 오래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 기쁘고 또 슬프고 슬픔이 터져 혼자서 슬픈사람은 울 곳이 마땅치 않다 지천에 깔린 꽃들은 슬픔을 알고 있다 가을 선운사에서는 세상의 많은 말들이 부질없다 영혼의 씨앗이 뿌려져 꽃 피운 상사화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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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편지 /나호열삶 2020. 9. 22. 08:00
긴 편지 /나호열 풍경風磬을 걸었습니다 눈물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너무 높이 매달아도 너무 낮게 내려놓아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오래 있다가 이윽고 아주 오랜 해후처럼 부등켜 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와르르 눈물이 깨질 때 그 안에 숨어 있던 씨앗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날마다 어디론가 향하는 손금 속으로 사라지는 짧은 그림자 말이지요 너무 서두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금씩 솟아올라 고이는 샘물처럼 풍경도 슬픔을 제 안에 채워두어야겠지요 바람을 알아버린 탓이겠지요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입니다 힘찬 하루 여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