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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오르는 산(3)
    2015. 2. 16. 14:46

    외길 / 천양희

    가마우지새는 벼랑에서만 살고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삽니다.
    유리새는 고여 있는 물은 먹지 않고
    무소새는 둥지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들은 날아오릅니다.
    새들은 고소공포증도 폐쇄공포증도 없습니다.
    공중이 저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놓아두시지요.
    외길이 나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내버려두시지요.

    백록담 !

     

     

     

     

    멋진 설경!

     

     

     밥 / 천양희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서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것이니까

     

     

     

     

     교감 / 천양희

    사랑때문에 절망하고
    절망 때문에 사랑한다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
    환멸은 길고 매혹은 짧다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
    그 말에 우린 서로 '그래 맞아'
    그렇게 말했었지요.

    희망 때문에 절망하고
    절망 때문에 희망한다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
    현실은 길고 환상은 짧다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
    그 말에 우린 서로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그렇게 말했었지요.

     너에게 쓴다 /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진 자리에 잎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生 풍화되었다.

     

     

     

     

     

     바람편지 / 천양희

    잠시 눈감고
    바람소리 들어보렴
    간절한 것들은 다 바람이 되었단다
    내 바람은 네 바람과 다를지 몰라
    바람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바람처럼 떨린다
    바라건대
    너무 헐렁한 바람구두는 신지 마라
    그 바람에 걸려 사람들이 넘어진다

    두고 봐라
    곧은 나무도
    바람 앞에서 떤다, 떨린다

     

     

     

     지나간다 / 천양희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 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한계 / 천양희

    한밤중에 혼자
    깨어 있으면
    세상의
    온도가 내려간다.

    간간이
    늑골 사이로
    추위가 몰려 온다.

    등산도 하지 않고
    땀 한 번 안 흘리고
    내 속에서 마주치는
    한계령 바람소리.

    다 불어 버려
    갈 곳이 없다.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한다.
    언 몸 그대로 눈보라 속에 놓인다

     

     누가 말했을까요?  / 천양희

    누가 말했을까요?
    살아 있는 것처럼 완벽한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하나의 생명일 때 기쁘고 기쁨은 곧 마음의 길을
    열어
    숨은 얘기 속삭인다는 것을

    여린 잎 속의 푸른 벌레와 생각난 듯이 날리는 눈발과
    훌쩍거리며 내리는 비가
    얼마나 기막힌 눈(目)이라는 것을
    그토록 작은 것들이 세상을 읽었다는 것을

    누가 말했을까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런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하나의 자연일 때
    편하고 편함은 곧 마음의 길을 열어
    숨은 얘기 속삭인다는 것을

    뒤꼍의 대나무숲 바람소리와 소리없이 피는 꽃잎과
    추위에 잠깬 부엉이 소리가
    얼마나 기막힌 소리인가를
    그토록 작은 것들이 세상을 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보았다는 것을
    하늘이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을

     

     

     배경이 되다 / 천양희

    새벽이 언제 올지 몰라 모든 문 다 열어놓는다고
    그가 말했을 때 꿈꿀 수 있다면 아직 살아 있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나에게만 중요한 게 무슨 의미냐고
    내가 말했을 때 어둠을 물리치려고 애쓴다고
    그가 말했다
    생각의 끝은 늘 단애라고
    그가 말했을 때 꽃은 나무의 상부에 피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세상에 무늬가 없는 돌은 없다고
    내가 말했을 때 나이테 없는 나무는 없다고
    그가 말했다
    바람이 고요하면 물결도 편안하다고
    그가 말했을 때 산은 강을 넘지 못한다고
    내가 말했다
    더이상 할말이 없을 때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 되었다

     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단추, 첫연애, 첫결혼, 첫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채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우두커니 / 천양희

    희망이 필요하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불행이 외면한다고 오지 않는건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묶는다고 튼튼한 건 아니었습니다.
    고통이 깍는다고 깍이는 건 아니었습니다.
    마음 한줌 쥐었다 놓는 날이면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되었습니다.

     너에게 쓴다 /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진 자리에 잎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生 풍화되었다.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이게 아닌데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산 넘어버렸지요

    이게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면서

    나는 그만 그강 건너갔지요

    이게아닌데 이게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집까지 갔지요

    이게아닌데 이게아닌데하면서

    나는 그걸위해 다른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되었지요

    그시간은 저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이른봄의 시 / 천양희

    눈이 내리다 멈춘 곳에
    새들도 둥지를 고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다
    바람은 빠르게 오솔길을 깨우고
    메아리는 능선을 짧게 찢는다
    한줌씩 생각은 돋아나고
    계곡을 안개를 길어 올린다
    바윗등에 기댄 팽팽한 마음이여
    몸보다 먼저 산정에 올랐구나
    아직도 덜 핀 꽃망울이 있어서
    사람들은 서둘러 나를 앞지른다
    아무도 늦은 저녁 기억하지 않으리라
    그리움은 두런두런 일어서고
    산 아랫마을 지붕이 붉다
    누가, 지금 찬란한 소문을 퍼뜨린 것일까
    온 동네 골목길이
    수줍은 듯 까르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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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