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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이 기쁨에게-정호승
    2014. 4. 17. 06:54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기적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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