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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동 산수유마을에 다녀왔습니다
    2022. 3. 27. 21:34

    산수유 마을에 갔습니다 /  강연호


    지리산 산동 마을로 산수유 사러 갔습니다

    산동 마을은 바로 산수유 마을이고

    그 열매로 차를 끓여 마시면 이명에 좋다던가요

    어디서 흘려들은 처방을 핑계 삼았습니다만

    사실은 가을빛이 이명처럼 넌출거렸기 때문입니다

    이명이란, 미국 같은 귓바퀴가 소리의 출구를 봉해버린 것이지요

    내뱉지 못한 소리들이 한꺼번에 귀로 몰려

    일제히 소용돌이치는 것이지요, 이 소리도 아니고 저 소리도 아니면서

    이 소리와 저 소리가 한데 뒤섞이는 것이기도 하구요

    어쨌거나 이면은 이명이고 산수유 열매를 입에 넣어

    하나하나 씨앗을 발라냈다던가요

    산수유, 하고 입 안에서 가만가만 굴글려보면

    이명이란 또한 오래 전 미쳐 못 다란 고백 같은 것이어서

    이제라도 산수유 씨앗처럼 간곡하게 뱉어낼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붉은 혀와 잇몸 같은 열매가 간절했답니다

    어쩌면 이명이 낫는 대신, 지난 봄의 노란 꽃잎마냥 눈이 환해지거나

    열매처럼 붉은 목젖이 자랄 수도 있었겠지요

    마을은 한참 산수유 열매를 따서 널어 날리는 중이었습니다

    씨앗을 들어낸 뒤 마당이나 길바닥에 펼쳐진 열매들은

    넌출거리는 가을 빛에 쪼글쪼글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득, 장롱에 차곡차곡 개켜 넣은

    철 지난 옷가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처럼 서글펐답니다

    이제 돌아가면 오래 전의 쑥뜸 자국 같은 한숨 한 번 몰아쉰 뒤

    이명보다 깊은 잠들 수 있을는지요

    산수유 사러 산수유 마을에 갔습니다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들 / 천양희

    열매를 보면서 꽃을 생각하고

    빛을 보면서 어둠을 생각합니다.

    꽃은 열매를 위해 피었다 지고

    어둠은 빛을 위해 어둡습니다.

    별을 보면서 하늘을 생각하고

    나무를 보면서 산을 생각합니다.

    하늘은 별을 위해 별자리를 만들고

    산은 나무를 위해 숲을 만듭니다.

    자랑하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우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신선이 먹던 열매 산수유,

    긴 겨울을 이겨내고, 구례 산동마을엔 노오란 산수유꽃으로 가득합니다

     

    사진 한컷 담아보면서,

    천양희 시인의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상실이란 시 한구절을 되뇌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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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