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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에는 / 최영미
    2015. 9. 13. 21:21

    가을에는 /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 홍성 궁리포구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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