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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의 시
    2013. 12. 3. 23:48

    12월-정호승-

     

    하모니카를 불며

    지하철을 떠돌던 한 시작장애인이

    종각역에서 내려

    힌색 지팡이를 탁탁 두드리며 길을 걷는다

    조계사 앞길엔 젊은 스님들이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플래카드를 내걸고

    분주히 행인들에게 팥죽을  나누어준다

    교복을 입은 키 작은 한 여고생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그냥 지나가는

    시각장애인의 손을 이끌고

    팥죽을 얻어와 건넨다.

    나도 그분 곁에 서서

    팥죽 한 그릇을 얻어 먹는다

    곧 함박눈이 내릴 것 같다 

     

     

    12월-이외수-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 내린다

     

    닫혀  있는 거리

    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흑백 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폭설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

    지워지고 있다 

    12월-박재삼-

     

    욕심을 털어 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1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벗고 눈에 젖은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은 심사로

    네 자리를 덥히며 살거라 

    12월-장석주-

     

    해 진 뒤  너른 벌판,

    하늘엔 기러기 몇 점,

    처마 밑

    알록달록한 거미에게

    먼 지방에 간 사람의 안부를 묻다 

    12월 저녁의 편지-안도현-

     

    12월 저녁에는

    마른 콩대궁을 만나자

     

    콩알이 머물다 떠난 자리 잊지 않으려고

    콩깍지는 콩알의 크기만한 방을 서넛 청소해두었구나

     

    여기다 무엇을 더 채우겠느냐

     

    12월 저녁에는

    콩깍지만 남아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늙은 어머니의 손목뼈 같은 콩대궁을 만지자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천상병-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  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김사인-

     

    도 한 잔을 부어넣는다

    술은 혀와 입안과 목젖을 어루만지며

    몸 안의 제 길을 따라 흘러간다

    저도 이젠 옛날의

    순진하던 저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뜨겁고 쓰다

     

    윗목에 웅크린 주모는

    벌써 고향 는 꿈을 꾸나본데

    다시 한 잔을 털어 넣으며

    가만히 내 속에 대고 말한다

     

    수다사(水多寺) 높은 문턱만 다는 아니다

    싸구려 유곽의 어둑한 잠 속에도 길은 있다 

    12월의 시-김사랑-

     

    마지막 잎새같은 달력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일년동안 쌓인 고통은

    빛으로 지워버리고

     

    모두 다 끝이라고 할 때

    후회하고 포기하기 보다는

    희망이란 단어로

    다시 일러났으면 좋겠네

     

    그대 사랑했으면 좋겠네

    그대 행복했으면 좋겠네 

     

    12월은-하영순-

     

    사랑의 종

    시린 가슴 녹여 줄

    따뜻한 정이었음 좋겠다

     

    그늘진 곳에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이었음 좋겠다

     

    딸랑딸랑 소리에

    가슴을 열고

    시린 손 꼭 잡아주는

    따뜻한 손이었음 좋겠다

     

    바람  불어 낙엽은 뒹구는데

    당신은 사랑을

    기다리는 허전한 마음 

     

     

    12월 단상-구경애-

     

    저기 벌거벗은 가지 끝에

    삶에 지쳐

    넋  나간 한 사람

    걸려 있고

     

    숭숭 털  빠진

    까치가 걸터앉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참새는 조잘거리고

     

    지나던 바람은

    쯧쯧,

    혀차며 흘겨 보는데

     

    추위에 떨던 고양이 한마리

    낡은 발톱으로 기지개 켠다 

     

    12월-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온느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빛나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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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