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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시모음
    2015. 10. 31. 21:25

    11월의 시/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을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11월의 나무처럼 / 이해인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 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11월 / 오세영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

     

     

     


     

    10월,

    마지막 밤,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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