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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8경, 한용운 생가지를 찿아서!
    2016. 2. 28. 20:19

    〔 만해 한용운 〕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년 8월 29일 ~ 1944년 6월 29일)는 일제 강점기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이다.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 활동을 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으며, 그것에 대한 대안점으로 불교사회개혁론을 주장했다.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이며 1944년 6월 29일중풍영양실조 등의 합병증으로 병사하였다.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보완하였다.[1] 또한 옥중에서 '조선 독립의 서'(朝鮮獨立之書)를 지어 독립과 자유를 주장하였다.

     

    1910년에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불교동맹을 반대철폐하고 이회영, 박은식, 김동삼 등의 독립지사(志士)들을 만나 독립운동을 협의하였다. 1918년 11월부터는 불교 최초의 잡지인《유심》을 발행하였고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하여 체포당한 뒤 3년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풀려났다. 1920년대에는 대처승 운동을 주도하여 중에게도 결혼할 권리를 달라고 호소하기도 하였다. 1926년 시집《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 언론활동에 참여하였다. 1927년 2월부터는 신간회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과 이듬해 신간회 경성지부장을 지냈다.

     

    1918년에《유심》에 시를 발표하였고, 1926년님의 침묵〉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님의 침묵에서는 기존의 시와, 시조의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로 시를 썼다. 소설가로도 활동하여 1930년대부터는 장편소설《흑풍》(黑風),《후회》,《박명》(薄命), 단편소설《죽음》등을 비롯한 몇편의 장편, 단편 소설들을 발표하였다. 1931년 김법린 등과 청년승려비밀결사체인 만당(卍黨)을 조직하고 당수가 되었으나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를 적발하는 과정에서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불교대전》,《십현담주해》,《불교와 고려제왕》 등이 있다.

     

    일제조선총독부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집도 조선총독부 반대 방향인 북향으로 지었고, 식량 배급도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또한, 친일로 변절한 최남선이 탑골공원에서 인사를 하자, 만해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차갑게 대했다고 한다. (위키백과)

     

    충절의 고장 홍성에서 배출한 훌륭한 선조가 많습니다

    특히 일제 식민지 시대를 지내면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킨 분들 중 한사람인 한용운 선사가 있습니다

    지척에 생가지가 있습니다만 가본지가 1년이 넘은듯 합니다

    아이들과 결성에서 칼국수 한그릇 하고 길을 잡았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부침이 왜 없겠습니까만은, 지난 시간의 아품이 현재에 이르고 있고

    위안부 문제로 국내 및  국제사회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진정한 사과가 없는 현실에서 맞는 3.1절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깨어있는 민족정신이 민존 생존의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임에 분명합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사상가인 한용운(1879~1944)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한용운선생은 고종 16년(1879), 8월 29일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 잠방골에서 청주한씨 서원군 한명보의 후손인 부친 한응준과 모친 온양방씨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한용운 선생의 어릴 때 이름은 유천(裕天), 자는 정옥(貞玉), 계명은 봉완(奉玩), 불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卍(萬)海)라

    한다.


    7세 때 홍성 남문동으로 이사, 한학을 배웠으며 9세에 문리를 통달하여 신동이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26세에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하여 경학의 대가로 명승강사가 되었다.

    1910년에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불교동맹을 반대철폐운동을 하였고, 1911년 조선사찰령이 내려지자 만주로 망명하여 이회영, 박은식, 김동삼 등의 지사(志士)들을 만나서 독립운동을 협의하였다. 1913년〈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출간하여 불교계의 개혁을 주도하였다. 1919년 1월 최린(崔麟) 오세창(吳世昌) 등과 상의하여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할 것을 결의하니 이것이 3.1 만세운동의 발단이 되었으며,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 보완하였다.

     

    1926년 시집〈님의 침묵〉을 발간하였다. 일제에 대항하는 단체였던 신간회를 주도적으로 결성하였는데, 이 신간회는 후에 학생 의거와 전국적인 민족 운동으로 전개되고 추진되었다. 선생은 민족독립 불교유신 자유문학의 3대 사상가로서 절의(節義)의 행적을 남기고 1944년 6월 28일(음 5월 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尋牛壯)에서 별세하였다.저서로 『님의침묵』,『조선불교유신론』, 『불교대전』 등을 남겼으며 그의 사후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앞이 안보일 정도로 함박눈이 내립니다

     

    생가지 모습!

     

     

     

    싸리울타리가 정겹습니다

    어렸을 시절에 많이 보았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만해사 오르는 길

    만해사 전경!

    피려고 물오른 매화 꽃망울이 눈에 얼어갑니다

     온통 힌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한용운선사의 동상을 바라보며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힘듭을 떠나서 생을 버린 의지와 신념에, 오늘이 있음을 감사하면서,,,,

     민족시비공원은 미끄러워서 다음에 뵙기로 하고,,,,

     

     

    한용운 선생 생가지 (韓龍雲 先生 生家址)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 있는 독립운동기요 승려이자 시인인 한용운 선생이 태어난 곳>

     

    종목; 충남 기념물 제 75호  |  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탄생지  | 

    면적 ; 484㎡  |  지정일; 1989. 12. 29.

     

    소재지; 충남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 318번길 83  |  전화; 041) 642-6716  |  관리자; 홍성군

    관람안내; 매주 월요일 휴관 

     

    충남 홍성의 역사 인물 답사여행,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에 이어 두번째로 찾은 곳은

    독립운동가요 승려이자 시인이셨던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생이 태어난 곳,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였습니다.

     

    이곳에는 한용운 선생의 생가(生家), 사당인 만해사, 민족시비공원, 만해문학체험관 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여유롭고 조용한 자연 속에서 만해 선생의 주옥같은 시편들과 함께 그의 애국정신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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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