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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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고독-김현승삶 2014. 10. 12. 00:39
절대고독 / 김 현 승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끞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나의 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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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주변을 걷다!삶 2014. 10. 9. 21:06
가을 김현승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텃밭의 상추와 김장용 쪽파가 가을 햇볕을 듬뿍 받고 있어요 김장용 배추 들깨를 수확해서 건조시키는 중! 바라만 봐도 배부르다, 그리고 아름답다 멋진 수채화!!! 가을은 언제나 부자가 된다 그리고 아름답다 햇볕의 매직은 계속될 것이다! 몸이든 마음이든 비우면 시원하고 편해진다 반대로 안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으면 몸이든 마음이든 병이 납니다 뭐든 비워야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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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사랑하라 - 정일근삶 2014. 10. 4. 10:31
사랑할 때 사랑하라 - 정일근 사랑할 때 사랑하라 아홉 손가락이 잘려 나가도 팔 하나를 내어 주어도 남은 손가락, 남은 손이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이 두 눈알을 다 가져가 버려도 사랑이 몸뚱이만 남겨 놓아도 사랑이 남아 있다면 사랑하라 지구별에 다시 빙하기가 오고 지구가 두꺼운 얼음에 덮여 검독수리가 죽고 향유고래가 죽고 흰 민들레가 죽고 오직 외발 하나 딛고 설 땅이 있다면 그 땅에 한 발 딛고 서서 나머지 한 발은 들고라도 서 있을 수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은 용서보다 거룩한 용서 기도보다 절실한 기도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도 사랑이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할 때 사랑하라 어제 저녁에 홍성군 다문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소망을 담은 등이 하늘로 오릅니다 이 저녁에 쏘아올린 소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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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기도 / 이해인삶 2014. 10. 1. 08:19
10월의 기도 / 이해인 언제나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좋은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냄새가 나는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타인에게 마음의 짐이 되는 말로 상처를 상처를 주지 않게 하소서 상처를 받았다기보다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늘 변함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살아가며 고통이 따르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은 사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마음에 욕심을 품으며 살게 하지 마시고 비워두는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고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게 하소서 무슨일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아픔이 따르는 삶이라도 그안에 좋은 것만 생각하게 하시고 건강 주시어 나보다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10월에는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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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에 앉아 / 정호승삶 2014. 9. 30. 21:36
철길에 앉아 / 정호승 철길에 앉아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철길에 앉아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멀리 기차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차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코스모스가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차가 눈 안에 들어왔다 지평선을 뚫고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기차는 곧 나를 덮칠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낮달이 놀란 얼굴을 하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흔들며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싶었다 아파트 화단의 가을 장미입니다 비가 내리니 더욱 예쁘고, 안쓰럽습니다 제가 겨울까지 보는 장미입니다 2014년 9월의 마지막 저녁입니다 책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돌아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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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에게 바치는 이력서 / 류시화삶 2014. 9. 29. 01:22
태양에게 바치는 이력서 / 류시화 1 나 태양에게 고백할 것이 있네 한때 나는 최고의 시인을 꿈꾸었으나 화살을 맞은 독수리 처럼 추락하였다 시인이 될 권리를 갖고 태어나 열 살부터 다락방에서 홀로 우주를 꿈꾸었으나 구름들이 몰려와 내 둥지를 감춰 버렸다 그리하여 나 삼류 시인처럼 거리를 헤매며 수년간 시를 잊고 살았다. 누군가 세상의 등록 장부에서 내 이름 석자를 지워 버렸다 2 나 태어나는 날 태양은 일식을 시작하고 꼬리가 여러개인 별똥별이 날아 와 점치는 여자의 눈에 박혀 버렸다 눈 먼 여자의 예언에 의할 것 같으면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어둠이었다 태양이여, 내 눈을 멀게 하렴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지 않도록 내 눈이 본 것과 보게 될 것들을 그리워 하지 않도록 태양이여, 내 눈에게 말하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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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있어 더 좋은 하루 / 윤보영삶 2014. 9. 24. 21:58
그대가 있어 더 좋은 하루 / 윤보영 그대를 잠깐 만났는데도 나뭇잎 띄워 보낸 시냇물처럼 이렇게 긴 여운이 남을 줄 몰랐습니다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어 자꾸 바라보다 그대 눈에 빠져 나올 수 없었고 곁에 있는데도 생각이 나 내 안에 그대 모습 그리기에 바빴습니다 그대를 만나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오래 전에 만났을 걸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만난 것은 사랑에 눈뜨게 한 아름다운 배려겠지요 걷고 있는데도 자꾸 걷고 싶고 뛰고 있는데도 느리다고 생각될 때처럼 내 공간 구석구석에 그대 모습 그려 넣고 마술 걸린 사람처럼 가볍게 돌아왔습니다 그대 만난 오늘은 영원히 깨기 싫은 꿈을 꾸듯 아름다운 감정으로 수놓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