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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사목과 아름다운 시!
    2013. 9. 29. 07:12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세석고원을 넘으며

     

    아름다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고

    발 아래 산맥들을 굽어보노라면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산머리에 어리는 기다림이 푸르러

    천벌처럼 적막한 고사목 숲에서

    무진벌 들바람이 목메어 울고 있다

    나는 다시 구불거리고 힘겨운 길을 따라

    저 능선을 넘어가야 한다

    이 세상으로부터 칼을 품고, 그러나

    서천을 물들이는 그리움으로

    저 절망의 능선들을 넘어가야 한다

    막막한 생애를 넘어

    용솟는 사랑을 넘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저 빙산에

    쩍쩍 금가는 소리 들으며

    자운영꽃 가득한 고향의 들판에 당도해야 한다

    눈물겨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지리산을 사랑했던 시인은 1991년 6월 장마 속에서 지리산을 등반하다 실족한 후

    급류에 휩쓸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

    겔3로 촬영

     

    일요일, 평화롭고 행복한 아침입니다

    여유로움으로 일상을 여시고, 좋은 날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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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