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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 도성길 3, 4코스 걷기
    2019. 1. 13. 17:50

     

     

     

     

    0, 산행코스 : 4코스^숭례문~돈의문터~인왕산~창의문(5km/2:30분)

                     3코스^창의문~백악산~숙정문~혜화문(5km/2:30분)

    0, 산행거리 : 10km / 산행시간 : 5시간

    0, 동행 : 홍성토요산악회

     

    강북삼성볍원에서 시작합니다

    농협중앙회 건물을 보니 잠깐의 소회가 흐름니다 ㅎㅎ

     

     

     

     

     

     

    미세먼지가 가득해서 조망이 별로?

    그래도 땀이 날 정도의 계단길을 올라 봅니다

     

     

     

     

     

    바위 위에 사는 멋진 소나무,,,!

    매일 서울 시내와 시님을 바라보겠지요,,,,?

     

     

    산 능선으로 길게 길게 이어지는 성벽,,,!

    돌을 파서 계단도 만들었습니다

    창의문 방면으로 내려갑니다

     

     

     

     

     

    백악산이 보입니다

    오랜 풍상을 견뎌낸 성벽과 소나무,,,!

    윤동주 시비를 읽어 보고,,,

    창의문에서 출입신고와 비표를 받습니다

    아침 10시부터 가능합니다

     

    창의문

     

    서울 한양도성의 북서쪽에 낸 사소문 중 하나로 다른 이름으로는 자하문으로도 부른다.조선 태조 5년1396 다른 문들과 함께 축조되었으며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문이다. 인조방정1623 당시에 거사에 가담한 군대가 이 문을 통하여 들어왔는데 그 사연과 공신들의 이름을 기록한 현판이 지금도 문루에 걸려 있다. 성문의 홍예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고 천장에도 봉황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창의문 바깥 지형이 지네의 형상이라서 지네의 천적인 닭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봉황을 새기고 그려 넣은 것이라는 속설이 전한다. 창의문 밖으로 나가면 환기미술관, 백석동천과 백사실 계곡, 세검정, 대원군별장이었던 석파정의 사랑채 건물, 탕춘대성의 홍지문, 보도각 백불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백악산으로 오릅니다

    계단이 많고, 경사도 좀 있습니다  ㅎㅎ

    아들이 군생활을 오래전에 마친 곳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큰 돌을 자르고, 다듬고,,,,

    움직이지 않게 사이에 짬돌을 박고,,,

    조상의 지혜와 숨결이 전해지는 곳 입니다

     

    북한산 인수봉이 희뿌연합니다 ㅠㅠ

     

    백악나루에서  귀염둥이 산악대장님이 대표로 한컷

     

    백악마루

     

    북악산을 서울의 주산(主山)으로 일명 백악(白岳), 면악(面岳), 공극산(拱極山)이라고도 했으며 경복궁 뒤쪽에 위치하고 남산과 대창하여 북쪽에 있다하여 북악이라고 한다. 모습이 탐스럽고 날씬하여 죽순같이 솟아오른 산 또한 벌어지기 직전의 모란꽃 봉우리로 비유되기도 했다. 높이는 342m로 내사산 중 가장 높다. 북악산 정상에서는 잘 보존된 자연환경과 더불어 고풍스러운 멋을 내는 서울성곽과 북한산의 봉우리, 서울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현대의 서울과 조선의 서울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시간과 긴 인고의 흔적은 성벽에  무늬로 남기고,,,,

     

    한양도성에는 한국 역사 전체가 아로새겨져 있다

     

    한양도성에는 우리 역사 전체가 아로새겨져 있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민족이 발전시켜 온 축성기법과 성곽구조를 계승하였으며, 조선시대 성벽 축조 기술의 변천,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처음 축조 당시의 모습은 물론이고 후에 보수하고 개축한 모습까지 간직하고 있어 성벽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문화유산이다.

    한양도성이 처음 완공된 것은 약 620년 전이다. 태조 5년(1396) 음력 1월 9일부터 2월 28일까지 49일 간, 이어서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49일 간, 모두 98일 동안 전국 백성 19만 7천 4백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전체 공사구간(총 5만 9,500척)을 600척씩 97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이름 붙인 뒤 군현(郡縣)별로 할당하였다.

    태조 때 처음 축성할 당시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쌓았으나, 세종 때 개축하면서 흙으로 쌓은 구간도 석성으로 바꾸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성벽 일부가 무너져 숙종 때 대대적으로 보수 · 개축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비하였다. 성을 쌓을 때에는 일부 성돌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태조 · 세종 때에는 구간명 · 담당 군현명 등을 새겼고 숙종 이후에는 감독관 · 책임기술자 · 날짜 등을 명기하여 책임 소재를 밝혔다.

    한양도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옛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됨에 따라 먼저 성문이 제 기능을 잃었고, 1907년 일본 왕세자 방문을 앞두고 길을 넓히기 위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었다. 이어 1908년에는 평지의 성벽 대부분이 헐렸다. 성문도 온전하지 못하였다. 소의문은 1914년에 헐렸으며, 돈의문은 1915년에 건축 자재로 매각되었다.

    광희문의 문루는 1915년에 붕괴되었고, 혜화문은 1928년에 문루가, 1938년에 성문과 성벽 일부가 헐렸다. 일제는 1925년 남산 조선신궁과 흥인지문 옆 경성운동장을 지을 때에도 주변 성벽을 헐어버리고 성돌을 석재로 썼다. 민간에서도 성벽에 인접하여 집을 지으며 성벽을 훼손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도로 · 주택 · 공공건물 · 학교 등을 지으면서 성벽이 훼손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한양도성의 중건은 1968년 1·21 사태 직후 숙정문 주변에서 시작되었고 1974년부터 전 구간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일단 훼손된 문화재를 완벽하게 회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단절된 구간을 연결하는 데에만 치중하여 오히려 주변 지형과 원 석재를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는 한양도성의 역사성을 온전히 보존하여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전승하기 위해 2012년 9월 한양도성도감을 신설하고, 2013년 10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한양도성 보존 · 관리 · 활용 계획을 수립하였다.

     

    (출처 : 한양도성 홈피에서)

    지나온 북악산(백악산)에서 이어진 성벽,,,!

     

     

    코스 잘못타서 잠깐 알바하고,,, ㅠ

    40분 걸어서 다시 와룔공원으로 와서 혜화동으로 하산합니다

     

     

     

    떠나지 못한 가을은 곱게곱게 ,,,

    오르는 이의 감성을 달래줍니다

     

     

    새로운 길 /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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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