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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응노화백 생가지를 찿아서,,,
    문화재,명승,고적 2015. 7. 4. 12:29

    고암 이응노 (1904~1989)의 생애


    죽사와 고암(1904~1944)

    (1904)-1세

    -음력 1월 12일 생

    -충청남도 엄격한 선비 집안에서 부친 이근상과 모친 김해 김씨 사이에서 5남 1녀 중 넷째 아들

     태어났다.

     (1910~1912)-7세~9세

    -홍성 보통학교 입학

    -1912년 일본식 신식 교육을 거부했던 집안의 뜻에 따라 학교를 중퇴한 고암은 이즈음 용봉산과 덕

     숭산 수덕사 부근을 사생하며 화가의 꿈을 키움

     (1920)-17세

    -충청남도 당진군(唐津郡) 순성면(順城面)의 염재(念齋) 송태회(宋泰會)에게 그림을 배움

     (1922~1923)-19세~20세

    -고암은 전통적인 관습의 굴레 속에서 시대에 뒤쳐지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상경을 결심한다. 

    -상경길에 비봉산 대동산제당(大同山祭堂)에 벽화를 그려주었고 서울 광화문의 종로 장의사에서 

     상여에 단청하는 일을 하기도 함

    -서울로 상경 후, 해강 김규진 (주: 海岡 金圭鎭(1868-1933), 1913년 우리나라 최초의 화랑인 고금

     서화관을 개설, 1915년 서화미술연구회를 열어 후진을 양성함. 안중식, 조석진 등과 함께 서화미술

     회, 서화협회 창립 발기인이었으며 조선미전 1회부터 6회까지 심사위원을 역임함) 문하에 입문

    -해강에게서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음;‘대나무 처럼 늘 곧고 푸르게 살아라’

     (1924)-21세

    -1923년 후진양성을 위해 설립한 고려미술원(高麗美術院)(주: 1923년 9월 박영래, 강진구 등이 

     당대 청년미술가들과 함께 발족한 고려미술회가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 1924년부터 김복

     진, 김은호, 변관식, 나혜석 등이 심영섭, 구본웅, 김용준 등을 지도하였음)의 연구원으로 수학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 사군자부<청죽> 입선

    -표구, 간판, 탁본일 배움

     (1928)-25세

    -공주, 대전 등지에서 활동하다 전주에 정착 ‘개척사’라는 간판업 경영 

    -번창하자 동생 흥노를 불러 인수시키고 그림에 몰두

     (1931)-28세

    -친구 돌잔치를 가는 길에 지나간 비바람 몰아치는 대나무 숲 발견...귀가 후 세 장의 그림 완성 

    -훗날 7년 만인 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세 장 모두 입선 그 중에 한 점은 특선

    (1932~1933)-29세~30세

    -제 10회 조선미술전람회 사군자부 <청죽> 특선(이왕직(李王職)상 수상), <풍죽(風竹)> 입선.

    <청죽>특선 이후 3년 동안 연속 입선.

    제11회 조선미전 동양화부(사군자부가 동양화부로 병합)에 <풍죽>, <대죽(大竹)>, <청죽> 무감사 출품 

    제12회 조선미전 동양화부 <분란(盆蘭)> 입선

    제13회 조선미전 동양화부 <매(梅)> 입선 

    -1933년 정병조(주: 葵園 鄭丙朝(1863-1945): 조선사(朝鮮史) 편찬에 참여했던 학자. 허백련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진 정만조(鄭萬朝)의 아우로 시문에 능하였으며 <노어산관집록> 4권을 남김) 로부터 고암(顧菴)이라는 호를 받음 ;고개지의 성에서 따온 顧와 집 菴을 뜻하는 ‘고개지처럼 훌륭한 화가가 되라’

     (1935~1939)-32세~36세

    -1936년 33세 안정적이던 전주의 간판점 처분하고 가족과 함께 도일

    -동경에서 신문 배급소를 운영하며 작품제작 활동을 함.

    -동경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學校) 동양화과 동경의 혼고회화연구소(本鄕會畵硏究所)서양화과에서 수학 

    -마츠바야시 게이게츠(松林桂月, 1876-1963)의 텐고화숙(天香畵塾)에 입문

    1938: 재동경미술학생협회 종합전, 04/23~27, 서울 화신화랑 

    1938: 제17회 조선미전 <동도하안(東都河岸)>, <동원춘사(東園春事)> 입선

    제95회 일본미술협회전, <풍죽>입선

    제18회 조선미술전람회 <황량(荒凉)> 특선(총독상 수상), <여름날(夏日)>, <소추(蕭秋)> 입선

    개인전: 이응노 신남화전, 12/16-20 , 서울 화신화랑 

    일본의 제1회 일본화원전 <산> 입선

    서울 제1회 조선서도전(朝鮮書道展) 회화부 <양추(凉秋)?> 특선

    서울 흥아서도전(興亞書道展) 회화부에 <청죽> 입선

     (1940~1944)-37세~41세

    -다수의 입선과 전시들...

    제2회 일본화원전 <북악산> 입선

    제19회 조선미전 <가을(秋)> 무감사 출품.

    개인전: 남화신작전, 06/24~29, 서울 화신화랑

    제1회 문인서화전 : 조선일보 후원? 

    제3회 일본화원전 <고옥(古屋)>입선?

    제20회 조선미전 <봉춘흥아(逢春興亞)의 집> 입선  

    제4회 일본화원전 <황량(荒凉)> 특선

    제21회 조선미전 <동도교외(東都郊外)> 입선

    조선남화연맹전, 10/01~07, 서울 정자옥(丁子屋)화랑(이하 現 미도파백화점으로 통일)  

    제5회 일본화원전 <노추(老秋)> 무감사 출품. 회우에 추거

    제22회 조선미전 <장날(市日)> 입선

    제6회 일본화원전 <황량(荒凉)> 출품. 

    제23회 조선미전 <춘추2제(春秋二題) 1, 2> 2점이 입선 

    어제는 강원도 홍천에 행사가 있어서 자가운전으로 다녀와서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4시가 조금 넘었다

    동녁에 여명이 밝아온다

    고향 동네인 홍북면 중계리 홍천부락에 고암 이응노 화백 생가지를 가려고 길을 나섰다

    세계를 가슴에 품다(1945~1959)

     

     (1945)-42세

    -1945년 초 고암은 전시체제하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충청남도 예산의 수덕사 입구의 수덕

     여관을 인수함. 이후 고암은 조강지처 박귀희 여사와 동생 이흥노에게 경영을 맡기고 상경하여 ‘고

     암화숙’을 개설함

    -9월 김기승, 김영기, 손재형, 이기우와 조선서화동연회(朝鮮書畵同硏會)를 조직

    -10월 조선 문화건설 중앙협의회 산하의 조선미술건설본부 회원 및 조선미술협회 상임위원으로 

      활동 

    -김영기, 배렴, 이유태, 장우성, 정진철, 정홍거, 조용승, 조중현과 단구미술원(檀丘美術院) 조직하

     여 민족예술을 재건하자는 움직임 전개 

     (1946~1947)-43세~44세

    두방전, 01/28-#, 서울 미도파백화점: 자유신문사 

    제1회 단구미술원 동인전, 03/01-07, 서울 미도파백화점 

    조선서화동연회 제1회 동인전, 05/#, 서울 덕수궁미술관

    전국한묵(翰墨)전, 06/#, 서울 덕수궁미술관: 대동한묵회주최, 미군정청문교부와 자유신문사 후원

    개인전: 07/#, 미국 적십자은행 클럽 초대

    제2회 조선미술가협회전, 10/#.

    제2회 단구미술원 동인전, 10/#.

    조선종합미술전 상임위원 및 초대작가가 됨

    조선종합미술전, 11/09-20, 서울 경복궁 근정전: 미군정청 문교부 주최,(<금강일우(金剛一隅) 혹은 춘추(春秋)>) 출품

    제2회 조선서화동연회.

     (1948~1954)-45세~51세

    -1948년 3월 홍익대학 미술학부에서 배운성, 윤효중, 이상범과 함께 초창기 교수로 참여. 

     1950년 6월까지 홍익대 미술학부를 지도

    -고암 화숙을 확장.

    -1950년 한국전쟁 중 장남 문세 납북. 

    -3.1기념전, 03/#, (부산공보원) : 부산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와 대한미술협회. <피난민>, <숯장수> 출품

    -대한미술협회전(이하 대한미협), 05/#. 이후 이 전시에 지속적으로 참여

    -개인전: 서울동화백화점화랑, 동아갤러리, 대전문화원, 서울화신백화점 화랑, 광주, 홍성, 수원, 예산.

    -학원사 주최 전국 중고등학교 미술전 심사위원 역임(1954년 까지)

    -6.25 4주년 기념 대한미협전, 05/#, 국립공보관: 국방부, 대한미협. <노우(怒牛)>,<반격(反擊)

      > 출품

    -1954년 경주 서라벌예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취임 

     (1956)-53세

    -고암미술연구소를 하고 있던 고암은 미술교습서《동양화의 감상과 기법(문화교육출판사/서울)》을 

     4월에 출판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

     (1957)-54세

    -국전의 폐단을 지적하고 문교부 장관 명의의 제6회 국전추천작가 초대를 거부.

    -미국 조지아대학의 미술교수(동양미술전공) 푸셋티(Ellen. P. Conant) 여사가 현대한국미술전 

     선정 차 내한하여 고암화실 방문.

    -현대한국미술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갤러리(Worldhouse Gallery): 한미재단, 아세아재단, 대한

     민국정부 후원. <출범>, <산> 출품. 이 작품은 록펠러재단(Rockefeller Foundation)에서 구입하

     여 뉴욕현대미술관에 기증

    -현대작가초대전, 11/21-12/04, 한국 서울 덕수궁미술관: 조선일보사 주최. <숲>, <산>, (<은조(隱鳥)> 출품 

    -세계미술평론가 협회 프랑스 지부장 쟈크 라센느(Jacques Lassaigne)로부터 도불 초청을 받음

     (1958~1959)-55세~56세

    서울 중앙 공보관에서 도불기념 개인전

    1958년 12월 26일 프랑스로 떠남

    독일에서 1년간 체류

    서독대사 헤르츠 박사의 추천으로 개인전(독일 프레스텔 갤러리, 브와세레 갤러리)

    이응노 박인경 부부 전(독일 본 시립미술관)

    파리의 고암(1960년대)

     

     (1960~1962)-57세~59세

    -1960년-1월 파리 정착

    -11월 파리 파케티갤러리와 전속 계약 체결 

     파게티화랑은 1951년 평론가 미셀 따삐에가 앵포르멜 운동을 등장시킨 전위전인 갤러리로,

     이후 고암의 예술은 프랑스, 스위스, 독일, 덴마크, 미국 등으로 소개 될 수 있었다.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1963)-60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3인 평론가 추천전, 03/20-4/20, 파리 막스 카가노비치갤러리 (Trois Critiques d'Art Presentent : Un Groupe de Peintres et sculpteurs, Galerie Max Kaganovitch/ Paris/ France) (주: J. Lassaigne의 추천작가: Karl Fred Dahmen, Vera Pagava, Ungno Lee, Claude Viseux / M. Ragon의 추천작가: Antonio Berni, Chavignier, James Guitet, Pierre Pinoncelli / P. Schneider의 추천작가: Pierre Boudreau, Andr Champeau, Sam Szafran, Vitulla)

    -제1회 국제 선구적 화랑전, 06/09-#, 스위스 로잔느 캉토날미술관 (1er Salon international le Galeries Pilotes Lausanne: Artistes et decouvreurs de notre temps), Muse Cantonal des Beaux-Art/ Lausanne/ Suisse). 출품작 로잔느미술관에서 구입

     (1964)-61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11월 초 프랑스 각계 인사 14명의 후원(알바르(ALVRD,미술평론가), 엘리세프(V. ELISSEEFF,세루누쉬미술관 관장), 아르퉁(HARTUNG,화가), 카임(J.KEIM, 역사가), 라센느(J.LASSAIGNE,전 파리현대미술관 관장), 술라쥬(SOULAGES,화가). 창대치엔(CHANG DAI CHIEN,화가), 쥬린(CHOU LING,철학박사), 후지타(FUJITA,화가), 이희승(LI HI SOUNG,언어학자), 매이 츄(MEI THU,화가), 스가이(SUGAI,화가), 창(K.TCHANG,철학자), 자우키(ZAO WOU KI,화가))으로 파리에 동양미술학교(Acadmie de Peinture Orientale)를 설립-동양미술학교는 서양에 동양미술을 알리는 교두보이자 고암이 추상미술세계를 추구하면서 서예와 사군자라는 전통 동양화의 세계를 잊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동양적 추상의 경지를 이끌어 내게 한 고암 예술의 또 다른 원천이기도 하다.

     (1965~1966)-62세~63세

    -이탈리아 로마 현대미술관 (Muse d'Art Moderne de Rome/ Rome/Italy)에서 작품 구입 

    -브라질 제8회 상 파울로 비엔날레, 09/14-11/29 (8 Biennale de Sa Paulo, Sa Paulo/Brazil). 은상 수상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11/11-1967/#, 덴마크 코펜하겐국립미술관, 히블레르갤러리 (Nationalmuseet Kbenhavn, Galerie Hybler / Copenhague/ Denemark). 고암 작품 매입

     (1967~1969)-64세~66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서울.안양.대전교도소에서 1년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룸  

    -석방된 고암은 잠시 예산 수덕여관에서 요양한 후 파리로 돌아감

    -프랑스 누벨 이마쥬 (Nouvelles Images/Lombreuie de Rives/France) 출판사에서 고암의 판화를 제작하여 판화집(Offset)에 수록  

    문자추상시대(1970년대)

     

     (1970~1972)-67세~69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파리 동양미술학교학생전;11/10-12/19, 파리 세르누쉬미술 (oeuvres et tudes de 

      l'Acadmie de Peinture Orientale de Paris, Muse Cernuschi/ Paris/ France)  

    -모빌리에 국립미술관(Muse Mobilier National/Paris/France)에서 타피스트리 原形을 의뢰, 

      매입

     (1973)-70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제6회 국제 타피스리 비엔날레, 6/16-9/30, 스위스 로잔느 국제 고대ㆍ현대 타피스리센터 

     (6e International Biennial of Tapestry: Lausanne-.S.A, Le Centre International de 

     la Tapisserie  Ancienne et Moderne). 입선작 프랑스 정부에서 구입 

    -현대판화전, 파리 국립도서관 (L'estampe contemporaine, Bibliothque Nationale/ 

     Paris/ France)

    -피에르 자키야르와 함께 (서(書)/Ides et Calendes) 출간.

    1973년 스위스 동양미학 연구자 자키야르와 공동저술책 내부에 실릴 글씨와 삽도안을 요청하였다가 고암으로부터 서예, 동양화, 추상미술의 관계에 관해 많은 조언을 얻은 후 그를  책의 공저로 기재함.

     (1974~1975)-71세~72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개인전;서예전, 02/20-#, 보르도 리브래리 뒤 플뢰브갤러리: 아닉 르 므완 

    (Calligraphies Chinoises; du Maitre Ung-no Lee, Galerie Librairie du Fleuve/

     Beaurdeux/ France : Annick Le Moine /Paris/France) ;‘전시(서예)장면 비디오제작’

     (1976)-73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11월 26일 파리에서 고려화랑을 개관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화랑개관 A구  페로네가에 위치.

     재불한국작가와 한국화가들의 파리창구 역할을 함

    -프랑스 주앵빌고등학교(Joinville C.E.S)에 벽화를 제작

    -프랑스에서 영화<Ung-no Lee> 제작

     (1977)-74세

    -1월 앙드레 모랭(Andr Morain)의 사진집《예술의 중심(Le Milieu de l'Art/Chne/Paris/France)》에 고암사진 수록 (앙드레 모랭이 1961-1976년

     까지 전시개막일에 금세기 주요 예술가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사진집. 연대기별로 구성되어 있는 이 사진집은 1975년 고암의 아닉 르 므완전시장 공연장면을 담음)

    -백건우 윤정희 납치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국내에서 작품발표는 물론 작품 매매가 공식적으로 금지됨.

     (1978~1979)-75세~76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8월 동양화 교습서인《수묵법채화법(水墨法彩畵法;Ung-No Lee, L'art de Peindre a L'encre de Chine/Sarl Koryo/Paris/France)》발행

    -미셸 따삐에의 마지막 서문이 실림

    -파리 뮤제 데 자르 데코라티프 (Muse des Arts dcoratifs/Paris/France)에서 작품 구입

    -파리 세루누쉬미술관 (Muse Cernuschi/ Paris/ France)에서 작품 구입 

    -파리 모네 에 메데이유미술관(Muse des Monnaies et Mdailles/Paris/France)에서 작품 

     구입 

     

    사람을 그리다(1980년대)

     (1980~1985)-77세~82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프랑스 “1850년부터 오늘부터 오늘까지 전”, 12/25-1983/1/15, 세브르 르 루브르 데 앙띠꿰르 (Svres de 1850 nos Jours, le Louvre des Antiquaires/Svre/ France). 세브르 국립도자기 공장에서 고암 작품제작 구입

    -파리 모빌리에 국립미술관(Muse Mobilier National/Paris/France)에서 타피스트리도안 3점 구입

    -파리 모네 에 메데이유미술관(Muse des Monnaies et Mdailles de Paris)에서 작품구입

    -1983년 프랑스 국적 선택 

    -1985년 9월 이응노, 박인경, 도미야마다에코(富山妙子) 대담집 『이응노-서울ㆍ파리ㆍ동경(그림과 민족에 대한 사색)/記錄社/東京/日本 』 출간

     (1986~1987)-83세~84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1986년 3월 고암을 주제로 한 영화 <우리나라>(ウリナラ/記錄社/東京/日本 )제작 (일본,동경,기록사: 조국을 그리며 파리에서 활동한 고암부부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조명한 기록영화. 16m/40분. 福田孝 감독)

    -개인전: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1988)-85세

    -다수의 초대전 초대출품

    -JAALA전, 07/08-17, 도쿄도미술관 (JAALA, 東京都美術館). 작품 구입

    -동양화 교습서인 『묵기』발행

     (1989)-86세

    -01/01-02/26,서울 호암갤러리 개인전  

    -1월 10일 파리의 보인병원에서 심장마비로 별세, 세계의 예술 대가들이 안장되어 있는 파리 시립 페르 라세즈 묘지에 안장

     

    --위 관련 내용은 ARTISKER 곽민지님의 불러그에서 펌글입니다 --

    미술관, 그리고 생가지를 돌아본다

    밝아오는 햇살에 속살을 드러낸다

    아무도 없다,,,,

    일찍 기상하신 농민들만 오토바이로 가뭄에 물을 냇갈에서 양수하신다

     

    생가터 앞에 모가나무에 모과가 열렸다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계절이이 지나면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가을을 선물하리라!

    생가지 앞에는 연꽃이 피기시작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이슬을 머금은 길에 첫발을 디딘다

    부지런한 꿀벌은 벌써 연꽃을 찿았다

     

     

    테크에 걸어온 발자국이 보인다

     

     

     

     

    고향 마을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그리고 천천히 논둑을 걸어 본다

    친구들이 살았던 집, 뛰어놀던 산과 들,,,,

    지난 봄처럼 느껴지는데,,, 시간이 바삐갔다

     

    겨우내 차가운 물과 흑 속에 묻혀있던 씨앗 하나가, 무겁고 딱딱한 대지를 뚫고

    모습을 들어내고, 꽃을 피운 오늘을 감상한다!

     

    고암 이응노 생가지 주소 : 충남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 384번지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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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