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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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정일근삶 2017. 6. 14. 18:42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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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하여 / 정일근삶 2017. 6. 12. 22:36
아름다움에 대하여 / 정일근 영원한 것은 아름답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영원히 살기를 바랐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삶이 나에게 가르쳤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아름다운 것은 순간이었다 언제나 지나가면 사라지는 헛것이었다 하늘 깊이 반짝이는 새벽별이나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 풀잎 끝에 매달린 맑은 이슬 같은 내가 진정 아름다워하는 것들은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 기다렸던 첫눈도 눈이 피우는 나무의 눈꽃들도 결국 녹아버리고 마는 흔적이었다 사람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첫사랑 첫키스 같은 가슴 떨림도 흑백사진으로 남는 추억이었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한 약속도 헛것이 되고 말았다 내가 영원히 사랑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것은 헛것이다 백 년 동안 색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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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사랑하라 - 정일근삶 2014. 10. 4. 10:31
사랑할 때 사랑하라 - 정일근 사랑할 때 사랑하라 아홉 손가락이 잘려 나가도 팔 하나를 내어 주어도 남은 손가락, 남은 손이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이 두 눈알을 다 가져가 버려도 사랑이 몸뚱이만 남겨 놓아도 사랑이 남아 있다면 사랑하라 지구별에 다시 빙하기가 오고 지구가 두꺼운 얼음에 덮여 검독수리가 죽고 향유고래가 죽고 흰 민들레가 죽고 오직 외발 하나 딛고 설 땅이 있다면 그 땅에 한 발 딛고 서서 나머지 한 발은 들고라도 서 있을 수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은 용서보다 거룩한 용서 기도보다 절실한 기도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도 사랑이 있다면 사랑하라 사랑할 때 사랑하라 어제 저녁에 홍성군 다문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소망을 담은 등이 하늘로 오릅니다 이 저녁에 쏘아올린 소망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