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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2018. 7. 14. 19:21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 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무렵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딸과 칼국수 한그릇 하고,,,

    일몰을 봅니다

     

    뭐 그리 바쁘다고 잊고 사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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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끝나는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