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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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바람 속에 / 이해인삶 2018. 2. 28. 19:23
3월의 바람 속에 / 이해인 어디선지 몰래 숨어들어 온 근심, 걱정 때문에 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 흰 눈이 채 녹지 않은 내 마음의 산기슭에도 꽃 한송이 피워 내려고 바람은 이토록 오래 부는 것입니까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볕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 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 데서도 잠들 수 없는 3월의 바람 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3월에 / 이해인 단발머리 소녀가 웃으며 건네준 한 장의 꽃봉투 새봄의 봉투를 열면 그 애의 눈빛처럼 가슴으로 쏟아져오는 소망의 씨앗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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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하여 / 김남조산 2018. 2. 26. 21:00
너를 위하여 / 김남조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 뜨는 건 믿을 수 없는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 버리고 못다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숨을 내쉬면서,,, 깊은 숨을 들이쉬면서,,, 세상의 고통과 부정적인 것들을 버렸다 내 상처가 아니라 작은 감정의 부스러기들을,,,! 풍경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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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하여 / 문근영산 2018. 2. 25. 20:59
우리를 위하여 / 문근영 사는 일이 자글자글하고 질퍽거릴 땐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지우고 노심초사 꼭꼭 눌러둔 사연 데리고 무작정 길을 떠나자 불가항력의 벽 앞에서 말로 풀어내지 못한 생각의 편린들도 치명적이었던 증오도 깡그리 지우고, 잘린 시간이 어둠에 잠기어 그리움이 하나씩 제자리로 돌아오는 세월의 길목, 뒤따라온 세월의 바람이 허공을 갉으며 흔들리면 안일하게 잊고 지냈던 잃어버린 우리가 뜨겁게 돋아 화끈거린다지울 수 없는 우리, 지금은 우리를 위하여 얼룩진 긴장을 풀고 무엇인가 하여야 할 때 서툰 밤길 같은 인생에서 서로 길이 되어 환해져 오는 길이 되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렇게 함께 늙어 갈 수 있도록 떠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살아 있음을 감사합니다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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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액자 / 고두현산 2018. 2. 25. 08:26
마음의 액자 / 고두현 멀리 있는 것이 작아 보이고 가까이 있는 것이 커 보이는 원근법의 원리 이미 배웠지만 세상 안팎 두루 재보면 눈에 멀수록 더 가깝고 크게 보이는 경우도 있지요. 오늘처럼 멀리 있는 당신. 어느 날 문득 내게로 오는 것이 돈오돈수(頓梧頓修)의 유리 거울이라면 끊임없이 가 닿기 위해 나를 벗고 비우는 일이 원근보다 더 애달픈 사랑이라는 걸 마음의 액자 속에서 비로소 깨달은 오늘. 어느 길도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드메트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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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온 소포 / 고두현산 2018. 2. 24. 08:00
늦게 온 소포 /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슬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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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 고두현산 2018. 2. 23. 18:30
사랑니 / 고두현 슬픔도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 세상 너무 환하고 기다림 속절없어 이제 더는 못 참겠네. 온몸 붉디붉게 애만 타다가 그리운 옷가지들 모두 다 벗고 하얗게 뼈가 되어 그대에게로 가네. 생애 가장 단단한 모습으로 그대 빈 곳 비집고 서면 미나리밭 논둑길 가득 펄럭이던 봄볕 어지러워라. 철마다 잇몸 속에서 가슴 치던 그 슬픔들 오래되면 힘이 되는지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 빛나는 뼈로 솟아 한밤내 그대 안에서 꿈같은 몸살 앓다가 끝내는 뿌리째 사정없이 뽑히리라는 것 내 알지만 햇살 너무 따뜻하고 장다리꽃 저리 눈부셔 이제 더는 말문 못 참고 나 그대에게로 가네 오랜 기다림을 안고, 채우지 못하는 결핍을 지고, 다른 존재로 채우려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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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굿 1 / 김초혜산 2018. 2. 22. 21:23
사랑굿 1 / 김초혜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 두는 숨은 뜻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 때문임을 압니다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고 사는 사랑의 혹법(酷法)을 압니다 두 마음이 맞비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褓)를 묶을 줄 압니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눈이 내려서 풍경을 만들고,,,! 바람은 그림을 그리고, 지나는 이들에게 잠시, 머무름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