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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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에 앉아 / 정호승삶 2014. 9. 30. 21:36
철길에 앉아 / 정호승 철길에 앉아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철길에 앉아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멀리 기차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기차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코스모스가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기차가 눈 안에 들어왔다 지평선을 뚫고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기차는 곧 나를 덮칠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낮달이 놀란 얼굴을 하고 해바라기가 고개를 흔들며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싶었다 아파트 화단의 가을 장미입니다 비가 내리니 더욱 예쁘고, 안쓰럽습니다 제가 겨울까지 보는 장미입니다 2014년 9월의 마지막 저녁입니다 책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돌아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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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드는 날,,, 도종환산 2014. 9. 30. 07:24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2013년 지리산 중산리에서) 9월의 말일 입니다 일상에서 부딪히다보니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리고, 계절은 깊어지고요,,, 우리의 마음도 심산에 물드는 붉은 단풍처럼 활활 타는 가을이고 싶습니다 행복한 아침에 소망 하나 담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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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농부이야기 2014. 9. 29. 21:38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대에는 마흔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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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에게 바치는 이력서 / 류시화삶 2014. 9. 29. 01:22
태양에게 바치는 이력서 / 류시화 1 나 태양에게 고백할 것이 있네 한때 나는 최고의 시인을 꿈꾸었으나 화살을 맞은 독수리 처럼 추락하였다 시인이 될 권리를 갖고 태어나 열 살부터 다락방에서 홀로 우주를 꿈꾸었으나 구름들이 몰려와 내 둥지를 감춰 버렸다 그리하여 나 삼류 시인처럼 거리를 헤매며 수년간 시를 잊고 살았다. 누군가 세상의 등록 장부에서 내 이름 석자를 지워 버렸다 2 나 태어나는 날 태양은 일식을 시작하고 꼬리가 여러개인 별똥별이 날아 와 점치는 여자의 눈에 박혀 버렸다 눈 먼 여자의 예언에 의할 것 같으면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어둠이었다 태양이여, 내 눈을 멀게 하렴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지 않도록 내 눈이 본 것과 보게 될 것들을 그리워 하지 않도록 태양이여, 내 눈에게 말하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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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으로,,,,산 2014. 9. 28. 10:40
사랑한다는 것으로 -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홀로서기 1 - 서정윤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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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선운사 상사화를 마감하며!문화재,명승,고적 2014. 9. 27. 20:07
지난 일요일 다녀온 선운사 상사화를 담아봅니다 그리고 곧 도솔천에 단풍이 들면 다시 가야지요? 상사화가 피어서 행복했습니다 꽃잎/나태주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우리는 만나서 웃었다 눈이 꽃잎이었고 이마가 꽃잎이었고 입술이 꽃잎이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그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와 사진을 빼보니 꽃잎만 찍혀 있었다. 행복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안부 / 나태주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사는 일 / 나태주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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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께 있으면 / 류시화음식 2014. 9. 26. 21:47
그대와 함께 있으면 / 류시화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나는 너무나도 행복한 기분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내 마음속의 모든 생각을 그대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느 땐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마치 내 마음을 털어놓은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항상 나를 이해하는 그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나는 너무나도 편안한 기분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사소한 일조차 속일 필요 없고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나는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신감을 갖습니다 나는 사랑으로 그대에게 의지하면서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대는 내게 특별한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